이란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쿠드스군) 사령관이 지난 3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바드 공항 인근에서 미군 공습으로 사망한 이후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카다이브 헤즈볼라는 4일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 내 군기지를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공격 시점은 5일 오후 5시(한국시간 오후 11시)라고 밝히면서 “이라크 형제들은 미군 기지에서 1000m 이상 떨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이란이 보복을 천명하자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이란의 보복 공격에 대비해 이란 52곳을 이미 공격 목표 지점으로 정해뒀다”고 경고했다. 52개는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444일간 미 대사관에 억류됐던 미국인 인질 숫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연속 트윗을 통해 공격 수위를 높였다. 그는 “그들이(이란) 우리를 공격했고, 우리는 반격했다. 만약 그들이 우리를 또 공격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전에 맞았던 것보다 더 세게 그들을 때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군사 장비에 2조 달러(한화 약 2335조)를 썼다. 만약 이란이 미국 기지나 미국인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그 새롭고 아름다운 장비들을 그들의 방식대로 보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상국가의 군부 실세가 살해된 사건인 만큼 이슬람국가(IS) 수장 알바그다디의 사망보다 중동에 미치는 파장이 훨씬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이란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자존심이 상한 이란은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미국에 타격을 입히려고 할 것”이고 전망했다.
⓵분노한 이란
솔레이마니 사망 이후 이란은 잇따라 “가혹한 보복”을 시사하고 있다. 4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솔레이마니의 딸 앞에서 “복수”를 다짐했다. 유족을 찾아 조문한 로하니 대통령은 솔레이마니의 딸이 “누가 우리 아버지의 복수를 하느냐”고 묻자, “우리 모두다. 이란의 모든 국민이 선친의 복수를 할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이란의 분노는 엄청나다. 4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열린 솔레이마니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의 추모객이 모여 “미국과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이라크와 이란은 솔레이마니를 추모하기 위해 4일부터 사흘간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⓶미국은 추가 파병
미국은 중동에 추가 병력을 파병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WP)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국은 중동에 병력 3500명을 추가 파병한다. 이란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 차원이다. 이라크에 있는 미국인들은 “즉시 출국하라”는 미 대사관의 소개령에 따라 이라크를 ‘탈출’하고 있다.
반면, 이란의 보복 우려가 확산하자 뉴욕 등 미국 대도시들에선 반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워싱턴 백악관 앞에는 시위대 1000여명이 몰려 “전쟁 반대” 등을 외쳤다. 빌 드 블라시오 뉴욕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뉴욕 경찰이 주요 시설에 대한 보안을 강화했다"고 밝히면서 “현재 우리는 사실상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⓷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란의 분노는 어디로, 어떻게 향할까. 미국·이란 간의 충돌이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는 만큼 국내외 전문가들의 예상도 엇갈린다.
우선, 이란이 이라크 등 동맹국에 포진한 친이란 민병대를 앞세워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 중동 주둔 미군이나 미국의 우방국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다이브 헤즈볼라는 솔레이마니가 사망한 이튿날인 4일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정상률 교수는 “군사력은 막강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란에도 전쟁은 부담”이라면서 “대신 이란은 중동 곳곳에서 친이란 민병대를 앞세운 '대리전(proxy warfare)'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솔레이마니의 사망을 계기로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에서 반미 세력이 강하게 결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솔레이마니는 이들 국가의 친이란 민병대에서 영향력이 막강했다. 때문에 시아파 세력이 결집해 미국과 이스라엘 등 미국의 우방국에 대해 다양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이외에도 이란이 해커를 동원한 미국을 향한 사이버전을 벌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2020-01-05 08:32:01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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